탄생기 · No.58
바람이 많이 불던 날
58번이 떨어진 날은 바람이 몹시 불었어요. 스케치북 밖에서 누가 창문을 열어 두었나 봐요.
잉크 방울은 똑바로 떨어지지 못하고 이리 휘청 저리 휘청하다가, 종이 위를 한참 데굴데굴 굴렀어요. 방울이 지나간 자리마다 가느다란 선이 남았지요.
방울이 겨우 멈춰 눈을 떴을 때, 둘레는 온통 꼬불꼬불한 낙서 선투성이였어요. 58번네 노란 마당에 지금도 낙서가 남아 있는 건 그 때문이에요.
58번이 눈을 뜨고 처음 한 말은 “오.“였어요. 그 뒤로도 뭘 보든 “오.” 해요. 마을이 너무 신기해서 입을 다물 수가 없나 봐요.
머리카락은 바람에 다 날아가고 배냇머리 몇 가닥만 남았어요. 그래도 58번은 이 머리가 마음에 들어요. 바람이 불면 이 몇 가닥이 제일 먼저 알려 주니까요.
볼이 늘 발그레한 건 그날 바람 속을 한참 굴러다닌 탓이에요. 그 바람이 아직 볼에 남아 있대요.
바람 부는 날이면 58번은 마당에 나가 낙서 선 사이를 뛰어다녀요. 그러고는 또 이렇게 말하지요. “오.”